세션카드: 코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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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적시던 비는 어느새 폭우가 되어 내리는 중입니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금,
 
알리시아는 집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꺾일 기미 하나 보이지 않으매 비는 더위를 감추지 못합니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입니다.
 
알리시아가 괜히 강수량에 대해 떠드는 뉴스에 집중하다 보면,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29
판정결과: 실패
(...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쏴아아- 매서운 빗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비는 언제 즈음 그칠까요?
 
재판정이 가능합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24
판정결과: 실패
(...무슨 소리지?)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
 
“8월 하순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의 강수량이….”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듣기
기준치: 5/2/1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듣기
기준치: 5/2/1
굴림: 40, 63, 13
+2: 실패
+1: 실패
0: 실패
-1: 실패
-2: 실패
 
(실화인가)
 
빗소리보다 조금 더 거칠고 무게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앵커가 무어라 하든 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니까요.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
 
“시간당 100mm로 인천 전역을 시작해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으며,”
 
-똑
 
“기습폭우로 인한 피해 역시 속출하는 중입니다.”
 
똑똑.
 
확실하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택배를 시켰던가요?
 
누가 집에 방문하기로 했던가요?
 
기억을 더듬어도 방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알리시아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팟-
 
몇 가지 소리와 함께 가전제품들의 불이 꺼집니다.
 
정전입니다.
 
우중충한 하늘 덕에 잿빛이 슬금 들어온 집안은 낮임에도 어둑하네요.
 
인터폰마저 지직,
 
뚝.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어째 예감이 좋지 않네요.
 
문을 열어줄 건가요?
 
아님, 조용히 그 누군가를 무시할 건가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어두운 집 안에서 혼자 있는 게, 불안해진다.) 누가… 오기라도 한 건가. (현관문에 가까이 다가간다.)
 
"..."
 
"...알리시아?"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던 참에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잠깐 몸을 굳힌다.)
 
다행히도 이름 모를 방문객은 아닌 모양입니다.
 
꽤 익숙한 목소리… 그래요,
 
로이드인 것 같은데.
 
비가 힘껏 쏟아지는 창밖을 보면 어떤 이유에서 연락도 없이 찾아왔을지 쉬이 예상되지 않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 프론테라...? (잠깐 고민하던 손이 현관문을 열어젖힌다.)
 
여전히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실내는 어둑하기만 합니다.
 
문이 열리고,
 
문 앞에 선 상대를 확인하면…
 
뚝, 뚝.
 
흥건히 젖은 바닥이 보입니다.
 
그리고, 물벼락을 맞은 듯 푹 젖은 옷을 입은 로이드도 함께.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머리카락,
 
하염없이 물이 떨어지는 옷,
 
또….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알리시아 선배."
 
당신을 부르는, 파리한 인상의 로이드.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로이드의 불안한 눈길이 당신을 향합니다.
 
한참을 살피더니, 이유 모를 한숨도 함께 뱉네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지금 이 시간에, 여긴 어떻게... (로이드의 다 젖어버린 옷을 위아래로 쳐다본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쩐지 쉽게 물어볼 용기가 들지 않는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알리시아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곤 불안한 눈길로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연다.) 괜찮은 거죠?
 
…무엇이?
 
그리 묻는 로이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고칩니다.
 
아까처럼 목소리를 떨지 않고,
 
그저 태연한 낯으로.
 
우산이 없어 알리시아의 집을 방문했다는 이유도 함께 덧붙입니다.
 
우선은 젖은 로이드를 집안으로 들이는 게 좋겠죠.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표정을 뻔뻔하게 하는 건, 왜 이런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건지.) 일단, 들어와. 거기에 계속 서 있다가는 감기 걸리겠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알리시아의 대답에 정신 차리고는 현관문 안으로 발을 들인다.) 아, 네. (...) 안은 왜 이렇게 어두워요? 비도 오는데, 불이라도 켜두시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의 얼굴을 살짝 올려다본다.) 정전이었어. 방금. (로이드가 꽁꽁 숨겨두고 있는 마음을 읽기라도 하려는 건지, 조금은 날카로운 눈빛이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구는 로이드의 속마음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시간에 어딜 가고 있었길래, 우산도 없이...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알리시아의 얼굴을 마주봤다가 저 너머로 보이는 TV를 빤히 쳐다본다.) 정전이었다고요? 근데 저 TV 조금씩 전원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은데... (날카로워 보이는 알리시아의 눈빛을 슬쩍 피하고는 말을 잇는다.) 아, 어차피 저희... 떠나야 하니까요. (조금 작게 말한다. 잠깐 불안한 표정이 엿보엿던 것 같기도.)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의 시선에 고개를 돌려 TV를 쳐다본다. 로이드의 말대로 화면에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래, 이제 조금씩 돌아오나 보네. (그런데, 떠난다고? 어디로? 이상하리만큼 흐릿한 기억을 헤집어보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다.) 떠난다고...?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뭐, 돌아오고 있다는 건 다행이네요. (완전히 전원이 켜진 TV를 바라본다. 기습폭우... 지금은 어느 채널을 틀어도 그 내용만 나오려나.) 아, 그냥 혼잣말이에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뻔뻔한 표정을 짓는다.) 근데, 저 좀... 들어가면 안 되나요? 추운데...
 
다시 전원이 들어온 네모난 상자 속 [뉴스]는 여전히 이번 기습폭우를 다루고 있으며,
 
[화장실]에서는 뽀송한 수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 [부엌] 찬장에 고이 모셔둔 티백으로 차가운 KPC의 몸을 녹일 수 있겠네요.
 
[로이드]는 젖은 탓에 그저 우뚝 서 있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우선 젖은 몸을 말려주는 게 우선이겠지. 저대로 계속 있다가 감기라도 걸리겠어.) 우선, 저기 앉아있어 봐. (수건을 가지러 화장실로 향한다.)
자, 여기. (수건을 툭 던진다.) 몸이라도 말리고 있어봐.
 
로이드는 짧게 대답하곤 앉아서 알리시아가 던진 수건을 받습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죄송한데 수건 딱 한 장만 더... (뻔뻔하게 미소짓는 표정으로 요구한다.)
 
습기 가득한 눅눅한 하루라 해도 수건은 뽀송한 게 제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수건을 꺼내던 알리시아,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저 뻔뻔한 사내를 위해 수건을 가져다주고 있는 나도 참...) 응?
 
가지런히 놓인 칫솔이 눈에 밟힙니다. …원래 저런 색이었던가요?
 
그렇게 수건을 들고 화장실 밖을 나가는 순간,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행운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습니다.
 
역시 전교회장은 다르네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갑자기 왜 이러지? 내가 이렇게 넘어질 뻔하다니. 앞으로 운동과 훈련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아래에 뭐가 있었나 싶어 아래를 쳐다본다.)
 
왠지 모르게 타일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특별한 게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바닥이 조금 미끄러웠던 것 같네요.
 
알리시아의 그런 모습을 로이드가 빤히 쳐다봅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뭐지? 타일이... 색이 원래. 이랬나?) 자 여기, 수건. 설마 한 장이 더 필요하다고 하진 않겠지? (칫솔도 색이 이상하던 게 기억에 밟히지만,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로이드의 모습을 보고 잠시 생각을 멈춘다.)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실래?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아,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네요. 성은이 망극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게 웃으며 받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넘어질 뻔한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말했다간 혼날 것 같은 직감에 입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따뜻한 차요? 당연히 좋죠. 종류는 뭐, 아무거나.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또, 저 입에 발린 성은이 망극하다는 소리는. (슬쩍 웃으면서 부엌을 바라본다.)
 
찬장에는 티백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어디서 받았던 건지,
 
직접 산 건지 기억은 흐릿하지만요.
 
알리시아가 찬장 문을 열어볼 경우….
 
덜컹,
 
내부는 텅 비어있습니다.
 
분명 많이 남아있었는데,
 
누가 먹기라도 한 걸가요?
 
지금 로이드에게 줄 수 있는 건 따듯한 물이 전부입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행운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왜 물 밖에 안 남아있는 거지?)
 
다시 찬장을 둘러봐도 있는 건 없습니다.
 
지금은 컵에 따듯한 물을 받아 건네주는 수밖에 없겠네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분명, 먹을만한 게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물을 한 컵 받아 로이드에게 가져간다.) 자, 따뜻할 때 얼른 마셔.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분명... 차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떨떠름하게 받고는 알리시아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한 입 마시고 입을 연다.) 큼큼, 그냥 따뜻한 물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까 수건도 하나 더 달라고 했는데, 혹시나 혼날까봐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시선은 TV로 향한다.)
 
“기습폭우에 의한 피해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를 따라 TV가 전하는 소식을 듣는다.) 비 소식이 계속 들리네. (수건으로 한 번 닦아내었음에도 여전히 젖어있는 로이드를 곁눈질한다.) 오던 길에, 비가 온 거야?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TV를 보다가 물기를 닦아내기 위해 반쯤 수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말한다.) 네, 오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라고요. 누가 비 오라고 주문이라도 외운 것처럼...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화면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합니다.
 
여름철 장마는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전국을-그리고 한 주가 비로 가득한 건 이번 여름 중 처음입니다.
 
“유명 스포츠 선수 A씨의 은퇴 사실에 관한 루머들이…”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자세히 들어보니 처음 듣는 내용인 것 같은데,
 
다음으로 다루는 뉴스 내용은 낯설기만 하네요.
 
그렇게 TV를 보다가 로이드를 쳐다보니...
 
세찬 비를 맞은 탓인지 로이드의 낯은 평소보다 더 창백합니다.
 
그 외 평소와 다른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평소와 다른 점이....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저렇게 창백한 표정은 처음 보는데.) 로이드, 괜찮아?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 로이드를 가볍게 잡는다.) 내가 부회장 해달라고 했을 때보다 표정이 안 좋은데.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닿는 손길에 알리시아에게로 눈길을 향한다.) 아, 괜찮아요. 사람이 원래 비 쫄딱 맞으면 그렇죠, 뭐. (부회장 이야기에 놀라며 인상이 웃는 듯하면서 썩은 표정이 된다.) 윽, 그때만 하겠어요? 뭐, 어쨌든 지금 부회장 잘 하고 있잖아요? 아, 맞다. 내일 개학식도 있는데...
 
그 순간,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찰나,
 
로이드의 왼 위로 여린 푸른빛이 반짝거립니다.
 
분명 어떤 형태를 이루면서요.
 
다시 살펴본다면 로이드의 왼팔은 멀쩡하기만 합니다.
 
쏴아아,
 
비는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른 로이드는 간간이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질적인 하루입니다.
 
폭우와 정전,
 
빗방울과 로이드,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여름.
 
내일은 개학식이니 로이드도 일찍 집에 돌아가야겠죠.
 
폭우에 집에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걱정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분명 푸른 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는데...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건가?) 그래, 내일 개학식인데 일찍... 집에 가야 하지 않을까? (다시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본다.) 집에 어떻게 돌아가려고...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그렇죠, 내일 학교도 가야 하죠... (...) 집은 저도 가고 싶네요. 비가 이렇게 많이 오다니, 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낮게 말했다.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알리시아"
 
당신의 이름이 허공을 둥둥 부유합니다.
 
나지막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사뭇 진지한 표정의 그가 보입니다.
 
로이드의 손등에 새겨졌던 빛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당신만을 오롯이 담은 그 눈에 푸른 빛이 스칩니다.
 
동시에 로이드의 손등부터 팔 위의 피부로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늬가 그려집니다.
 
마치 별자리처럼……
 
지금 알리시아는 무얼 보고 있는 거죠?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이번에는 잘 될 거예요.
...기억하실 수 있죠?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알리시아는 지금 이 상황, 이 공간이 너무나도 고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가 그쳤던가요?
 
창밖을 바라보면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비는 허공에 방울방울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둥근 물방울의 형태를 가지고서.
 
알리시아는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SANC 0/1.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이번에는 학교에서 만나는 거예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무어라 말하든 로이드는 알리시아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고 눈을 감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무늬는 로이드를 집어삼킬 듯 반짝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별자리가 촘촘히 수 놓인 로이드에게서,
 
우리에게서,
 
빛이 쏟아집니다.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요.
 
허공에 방울방울 매달린 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로이드가 입 모양으로 어떤 말을 전합니다.
 
하나,
 
둘,
 
셋,
 
...
 
...
 
...
 
...
 
“이번 주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열대야 역시 지속적으로…”
 
창밖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건조한 탓에 비는 내리지 않고,
 
알리시아,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상대는 어디로 갔나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본능적으로 로이드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려 한다. 그 순간, 자신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서히 눈을 뜬다.)
 
집 안에 남은 건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
 
그리고 당신뿐입니다.
 
SANC 1/1d2.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마치 영화 속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듯 페이드아웃 없이 한순간에 뒤바뀐 세상.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창밖, 로이드가 있던 자리, 뉴스를 살펴볼 수도 있고,
 
로이드에게 전화를 걸어볼 수도 있겠네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혼란스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본다. 집 안에 가득 들어오는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창밖을 바라본다.)
 
푸른 하늘입니다.
 
작은 구름 몇 점이 동동 떠 있고,
 
햇살은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립니다.
 
먹구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비가 가득 내렸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이내 눈이 부신 햇빛을 피해 시선을 돌린다. 로이드가 앉아있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로이드에게서 뚝뚝 떨어지던 물마저 사라졌습니다.
 
손으로 만져본 가구들은 모두 마른 상태입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무의식적으로 자리에 가서 앉는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듯한 자리에.) 뉴스나 확인해볼까. (TV를 켠다.)
 
기상캐스터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중입니다.
 
장마철인데도 이렇게 맑은 날이 지속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분명 전부 비였는데….
 
날짜나 시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기억하던 그때 그대로입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장마철에, 계속 매일매일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고? 이상한 마음이 들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전화나 한번 해볼까.
(익숙한 번호를 누른다.)
 
뚜--- 뚜.
 
뚜--- 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
 
신호음만 한참 이어지더니,
 
전화를 받을 수 없어…로 시작하는 기계음이 울립니다.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돌아오는 답은 없습니다.
 
그 외의 다른 것을 살펴보아도 평범하고 익숙한 당신의 집일 뿐입니다.
 
창밖은 그늘마저 푸르러 바다를 베어 옮겨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매미 소리,
 
물감을 풀어둔 푸른 하늘,
 
건조한 여름.
 
알리시아가 꿈이라도 꾼 걸까요?
 
쏟아지는 햇살에 이처럼 눈이 따가운데도?
 
폭우도 로이드도,
 
그리고 반짝이던 무늬마저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게 틀림없잖아요?
 
로이드는 연락을 받지도 않으니 내일 학교에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학교에서 만나자고 말했었죠.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학교…. 학교에서 만나자니. (로이드가 했던 말을 잊지 않으려는 듯이 잠시 중얼거린다.)
 
...
 
...
 
...
 
개학,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오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펄럭이는 교복들이 흰나비처럼 이곳저곳 쏘아 다니네요.
 
어제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빼면 이 여름은 평범한 하루와 다를 것 하나 없어 알리시아는 배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꿈이었을까요?
 
걸음은 느릿해집니다.
 
보통은 횡단보도를 건너,
 
가로등 두어 개를 지나면 로이드가 보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 선배, 그거 들으셨어요? 오늘 정상수업이래요.
 
알리시아의 어깨에 자연스레 팔을 걸치는 건 다름 아닌 학생회 후배입니다.
 
로이드는 보이지 않습니다.
 
: 그보다 오늘 날씨 좋네요. 보통 이맘때 즈음이면 비도 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으, 으응. 그러게. (로이드가 아니라서 실망한 걸까. 내심 로이드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티를 후배에게 내고 싶지 않아서 애써 표정을 감춘다.) 오늘따라 햇빛이... 쨍쨍하네.
 
: 선배 오늘따라 정신 되게 멍한 것 같은데? 연락 안 되는 학생회 애들이라던가, 그런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연락 안 되는 애라면. 있지. (문득, 학생회 후배라면 부회장에 대해서 모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시... 부회장 어딨는지, 본 적 있어?
 
: ...부회장이요? 그 언니 아까도 저랑 연락했었는데? 실루리아 선배님 말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상하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실루리아? 분명 들어본 이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실루리아는 부회장이 아니지 않았나? 의문을 꺼내고 싶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후배의 표정에 다시 입술을 다문다.) 아냐, 학생회실 가면... 있겠지. 늦겠다, 가자.
 
: 아, 네... 그러죠! (알리시아의 반응에 굉장히 의아한 표정을 보인다.) 아, 맞다!!! 보고서!!!!!
 
걸음을 멈춘 후배는 뒤를 돌더니 왔던 길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언갈 두고 온 모양이네요.
 
덩그러니 남겨진 알리시아의 뺨 위로 푸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집니다.
 
중력을 따라 떨어진 잎은 한가득 여름을 담아 푸르기만 합니다.
 
그리고….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아까 그 후배는 로이드와 친분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놀리는 걸까요?
 
의문도 잠시,
 
교문 앞 횡단보도입니다.
 
신호를 기다리며 건너기 전,
 
당신에게 전화 한 통이 도착하네요.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합니다.
 
화면을 보면 저장되지 않은 처음 보는 번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받을까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평소라면 모르는 번호는 바로 차단했을 것 같지만, 오늘은 왠지 평소같지 않은 기분이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전화를 받는다.)
 
휴대폰 너머로 옅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한참을 얘기하지 않은 채,
 
그저 숨소리만이.
 
잘못 건 전화일까요?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선배?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전화를 건 이는 로이드입니다.
 
불안하고, 여유가 사라진 그 목소리는 볼품없게 느껴져요.
 
동시에 그가 낯설기도 합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 맞아?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분명 수없이 마주했던 이와의 통화인데, 낯설게 느껴진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네, 맞아요. (불안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질문을 던진다.) 혹시 제 이름 정확하게 기억나세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머릿속이 어지럽다. 다시 한 번 집중해본다.)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떠올리는 데 3초 정도 걸렸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습니다.
 
분명 자주 부르던 이름인데도....
 
문득, 아까 로이드를 모른 체하던 후배가 생각납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잠시 깊게 생각하는 듯 조용하다가 입을 연다.) 혹시 기억은 돌아오셨어요? 설마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건 아니죠?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기억? 뭐가 돌아온다는 거야? (로이드의 이름은 가까스로 떠올렸지만,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제, 학교에서... 보자고. 하지 않았나? (묻는 말끝이 흐려진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아,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아니에요. 때 되면 돌아오겠죠. (씁쓸한 말투로 말한다. 아직까지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을 줄은 몰랐는데...) 일단 전 먼저 학교에 도착했어요. 알아볼 게 있어서 도서실에 들리려고요.
 
그 순간,
 
보행자용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뀝니다.
 
횡단보도,
 
그 하얀 선을 따라 걸을 때 즈음 로이드가 중얼거립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저, 얼굴이 사라지는 중이에요.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요?
 
그러나 로이드는 장난을 치는 기색이 아닙니다.
 
휴대폰 너머의 표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있습니다.
 
그리곤 전화를 뚝 끊어버리네요.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텐데.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원래도 감자 같은 얼굴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데, 사라지긴 무슨.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정신이 멍해집니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끼익-!
 
큰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운전자와 학생은 무어라 얘기하는 중입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인 걸까요?
 
소란도 잠시,
 
지각을 피하고자 모두 다시 학교로 걸음을 옮깁니다.
 
물론 당신도 그래야겠죠.
 
오늘 하루의 시작이 묘하고,
 
또 불안 불안하게만 느껴지네요.
 
한층 한층 계단을 오르다 보면 알리시아의 반이 보입니다.
 
오늘따라 파아란 창밖이 무섭게도 아름답습니다.
 
정신을 고쳐잡고 로이드를 찾으면,
 
다른 반 교실 속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로이드만이 없는 게 아닙니다.
 
KPC의 책상과 의자까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지나가는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이며,
 
교탁에 붙은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의 자리가, 여기쯤. 있지 않았나? (교탁에 가까이 다가가 자리표를 확인한다.)
 
교탁 위에 붙여진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자리 위로 이름과 학번이 적혀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활자를 짚어 살피면….
 
없습니다.
 
애초에 없던 학생처럼 로이드의 자리도,
 
이름도,
 
학번도.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다시 한 번 교실을 확인한다. 분명, 로이드가 있던 반이 맞다.) 어떻게 된 거지. (아까, 로이드가 기억이 돌아왔냐고 묻던 게 떠오른다. 기억을 떠나서, 네가 여기에 없는데 어떡하라는 건지. 이상할만큼 얄미운 그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라도 싶지만, 그는 지금 이곳에 없다.) 도서실...에 간 건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지나가던 친구들이 알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학 때 있던 일이나,
 
다른 학교보다 이른 개학에 대한 불만을 토하고 있습니다.
 
언제 도착했는지 등교 시간 때 만났던 후배도 보이네요.
 
로이드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저기, (지나가던 친구를 한 명 잡는다. 이걸 물어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 아닌지, 잠깐 고민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혹시 로이드라고, 알아? (부회장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다, 방금 전 후배와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질문을 멈춘다.)
 
: 그...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저희 반인가요? 그런 사람은 저희 학교에 없었던 것 같은데.
 
당신을 놀리는 기색이 아닙니다.
 
정말, 진지하게 지나가던 학생은 당황한 표정을 짓네요.
 
마치 벽을 두고 얘기하는 기분이라 알리시아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들 로이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자리표와 친구들의 얘기를 확인한 알리시아는 SANC 0/1.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SAN Roll
기준치: 49/24/9
굴림: 50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매미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울어댑니다.
 
둘,
 
셋,
 
당신에게 그리 속삭이던 로이드는 어디로 간 건가요?
 
모두가 한 사람을 잊고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창밖의 [푸른 하늘]은 작위적으로 맑고,
 
나무 아래 그림자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당신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이상한 기분이다.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하늘은 지독하게도 푸릅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씨라고 해도…
 
구름은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움직이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잘 보이지도 않는 구름이 꼼짝하지 않는 모습을 본다. 상식적으로, 계속해서 구름이 흘러가야 할 텐데. 자신이 알고 있던 게 하나둘씩 깨어지는 모습에 머리가 어지럽다.) (이내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매미의 돌림노래는 끝날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마치 녹음본을 틀어둔 듯 그 소리는 기이하게도 완벽히 반복됩니다.
 
잠시 멈추는 건 7초에 한 번,
 
소리가 커지는 것은 일정하게.
 
딩동댕동-
 
그 순간 힘차게 울리는 수업 종.
 
재잘거리던 아이들도 자리를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알리시아,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믿을 수 있나요?
 
모두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속삭여도?
 
선생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부재는 애초에 없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갑니다.
 
선생님: 예문에도 나와 있듯이 관계부사를 써야 하므로…
 
선생남: …에서, 그러므로 빈칸에 들어갈 말은.
 
Where.
 
몇 아이들이 답합니다.
 
동시에 선생님께선 당신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네요.
 
선생님: 알리시아가 오늘 영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네. 아까 말한 빈칸의 답, 한번 불러보렴.
 
모두의 시선이 당신에게 쏠립니다.
 
흔들림 없는 올곧은 시선을 보자 절로 속이 메스꺼워집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그때,
 
복도 쪽 창가를 익숙한 인영이 스쳐 지나갑니다.
 
햇살에 눈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분명 로이드를 닮은 이입니다.
 
선생님께선 벙긋하는 입으로 무어라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로이드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또 가득 채웁니다..
 
다짜고짜 뛰어나가야 할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잠시 고민한다. 이성은 먼저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본능이 앞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죄송합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놀란 모두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뛰어나간다.)
 
선생님: 알리시아?
 
당황한 표정의 친구들을 지나쳐 복도로 향하면 흔들리는 머리칼은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위로,
 
그리고 다시 위로.
 
어느 교실에선 시를 읊는 소리가,
 
어느 교실에선 공식을 정의하는 소리가.
 
계단을 오르는 이는 당신과 로이드뿐입니다.
 
로이드는 뒤 한 번 돌지 않고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네요.
 
숨이 부족해집니다.
 
한참을 걷던 다리가 저릿해질 때 즈음,
 
당신은 활짝 열린 옥상 문을 보게 됩니다.
 
…로이드가 이곳에 있을까요?
 
끼익-
 
문을 열고 옥상에 발을 딛자 철조망 밖 너른 하늘을 보는 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에서.
 
바람의 방향은 초 단위로 달라지고,
 
하늘 위 구름은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펄럭이는 교복,
 
흔들리는 갈색빛 머리카락.
 
당신이 무어라 하거나,
 
혹은 가까이 다가오자 로이드는 천천히 뒤를 돕니다.
 
아,
 
그 얼굴은 분명….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선배?
 
알밤 같은 뒤통수에 감자 같은 얼굴,
 
당신보다 조금 큰 키,
 
언제나 뻔뻔했던 그 눈.
 
하지만,
 
얼굴은 지우개로 문댄 듯 보이지 않습니다.
 
형태는 보여도,
 
흐릿하고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그 얼굴만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SANC 0/1.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에게,
 
그리고 로이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블러 처리가 된 듯한 그 얼굴에 몸이 반사적으로 얼어붙습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선배, 이상해요. 아무도 절 기억하지 못해요.
선배는 절 알고 있죠? 지금 제 얼굴, 보이세요?
 
울먹이는 표정.
 
아니,
 
저걸 표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흐릿한 얼굴은 여전히 뿌옇기만 합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떠올렸었는데,
 
…눈은 어떤 색이었고,
 
어떤 모양이었고,
 
또 어디에 자리 잡고 있던지.
 
알리시아마저 그 얼굴을 떠올리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가진 알리시아에 관한 기억들 역시 하나둘씩 지워지는 중이란 것을요.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안 보이시는 거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불안해 보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건줄 알았는데. 나만 지금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 건 줄 알았는데. 그래서, 로이드를 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의문들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로 저처럼 같은 의문을 갖고 있는 로이드의 모습에... 더욱 불안해진다.) 로이드 프론테라…. (로이드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가진 기억들이... 흐릿해지는 것 같아.
 
손을 뻗으려던 로이드는 그대로 굳어 당신을 마주 봅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분명 그리 느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요동칩니다.
 
가는 침묵이 흐른 후 로이드는 알리시아를 와락 끌어안습니다.
 
쿵,
 
쿵.
 
엇박자로 뛰는 심장 박동 소리.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기억들도 사라지고 있다고요? (분명히 떨리는 목소리였다. 이상하다, 분명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 정말로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아직도 기억 안 나시죠? 저희가 실종되었던 날이요.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묻어나온다. 불규칙한 파도가 해안으로 몰려와 거품이 되어 사라지듯. 자신이 사라지고 있는 건 인지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에서도 사라지는 건, 여름 내내 울다 사라지는 매미의 결말처럼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사라지다니, 무슨 소리야.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이 현실이라 말해주고 있는데도. 차마 로이드가 제 기억속에서까지 사라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폭우... 그래.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지. 그런데... 실종이라고? (기억을 다시 되짚어본다. 갑자기 사라진 건 로이드였지, 자신이 아니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 역시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거구나.) 여기, 저희가 살던 세계가 아니에요. 원래 차원의 관문으로 신도들에게서 도망쳤었는데... 그러다가 우주 미아가 되었고요. (알리시아는 기억하지 못하는 진실들과, 우리의 기억, 아니, 어쩌면 이젠 없어질지도 모르는 기억을 읊는다. 그러고는 진정한 듯 알리시아에게서 천천히 떨어진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차원을 넘었었고, 가끔 이렇게 다른 세계로 가다가 기억을 잃기도 했었는데...
 
…우리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하는 로이드에게 뻗던 손을 멈춘다.)
 
로이드의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영화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제물과 차원의 관문,
 
우주 미아와 다른 세계.
 
동시에 기이하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당신이 겪은 일처럼.
 
핸드아웃, 기억의 파편을 공개합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아스라히 흩어지기만 하던 기억의 파편 일부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로이드가 했던 말들이 조금씩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원래 있던 세계는 어떤 공간일까?) 로이드, 그대는...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지?
 
흐릿한 그 얼굴,
 
아니,
 
그 형체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인지,
 
혹은 다 알고 있지만 답해 줄 수 없단 것인지.
 
모든 것을 떠올린 알리시아,
 
SANC 0/1d2.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비가 멈추는 것은 주문진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도,
 
맑고 화창한 이 여름도.
 
모두 우리의 진짜 여름이 아닙니다.
 
우린 원래 세계를 찾아 한없이 우주를 넘나들었죠.
 
그 과정 중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어느 세계,
 
잘못된 위치에 떨어져 바다에 빠졌던 우리,
 
겨울 별자리가 보이던 또 다른 세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아서,
 
다음 세계로.
 
그렇다면 왜,
 
이번 평행세계에서 로이드는… 사라지는 중인 걸까요?
 
로이드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세계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이 세계는 확실히 다른 곳들과 달라요. (이제는 체념한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다들 절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사라지는 중이고요. (흐릿한 형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눈은 알리시아의 눈을 응시한다. 형체가 온전했다면 여전히 뻔뻔함을 보였을지, 불안한 눈길을 보냈을지, 눈물을 흘렸을지, 잘 모르겠다.) ...알리시아 선배, 선배도 역시 절 잊을지도 몰라요.
 
흐르지 않는 몽글한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선 곳의 짙은 파랑이 가려집니다.
 
로이드는 천천히 철조망에 기대앉아 당신에게 작은 수첩과 연필을 건넵니다.
 
당신을 위해 옆자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그 손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 손은,
 
로이드의 얼굴처럼 흐려지고 형태를 잃고 있습니다.
 
이건 잊지 않기 위한 기록입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고등학생이고, 선배보다 조금 큰 키에, 갈색 머리, 검은 눈. 아, 얼굴은 감자 같다고 써두면 좋겠네요. 그 편이 더 기억하기 쉬우실 것 같은데. (이제는 조금 태연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마치 한여름 밤의 물결처럼 잔잔하게.) 어서 여기 앉아서 적으세요. 아, 명령은 아닌 거 아시죠?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본인이 본인 얼굴을 감자 같다고 소개하다니) 스스로 그렇게 말하면, 너무 미화된 거 아닌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작게 웃는다) 명령은, 아니지. 그렇지. 명령은, 내가 너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그러나 학생회장으로서의 명령이 아닌 다른 명령은 기억 속에서 흐릿하다. 이를테면 국왕으로서의 명령이라던가.) 그래, 그렇게 기록해 두도록 하지. (로이드에게 받은 수첩에 몇 가지를 기록한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뭐, 이렇게 적어두면 기억하기 더 쉬우니까요. 잊지도 않을 거고...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하다니, 평생 자신은 알리시아 밑에서 똥강아지처럼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직감한 듯하다.) 윽, 그래도 지금까지 명령 잘 들으며 살아왔으니, 명령 거부권 같은 거라도 하나 주시면 안 되나요? (왠지 뭐 하나라도 잘못했다가는 평생 잡혀 살 것 같다. 모든 문서에 서명을 하는 일, 왕국의 정원을 설계하는 일 같은 것들을 전부 도맡아 할 것 같은 느낌.) 이런 것도 적어둘까요? 부회장이 돼서 늦게가지 학생회실에 남아 있었던 일 같은 거요. (반강제로 부회장이 됐다는 걸 기록하면 안 되겠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뭐? 명령 거부권?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 있었던 것 같은 묘한 기분을 헤집는다.) 명령 거부권이 너에게, 아니, 그대에게 있었던 세계는.. 어느 세계였을까? (고개를 돌려 로이드를 바라본다.) 그래. 우리가 회장, 부회장이었던 것도 적고. 내가 부회장 자리를 추천했다는 사실까지 함께 적도록 하지. (로이드와 눈을 마주친 채로 환하게 웃는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 아마 어느 세계에서도 제가 명령 거부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하지만 이번에 저에게 명령 거부권을 주신다면! 이 세계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부터 조금 특이한 경우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죠, 그것도... 추천이죠. 예... (지금 표정이 안 보이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취미나 좋아하는 것 같은 다른 것들도 적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 대련이 좋겠네요. (자신도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웃었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웃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기록을 적던 손을 멈춘다. 로이드를 바라보지만, 그가 웃고 있는지 혹은 울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세계를 더 특별하게...? (미소를 짓던 표정이 미묘해진다.) 네가 사라지는 세계는... (고개를 로이드의 반대편으로 돌리고는 말을 잇는다.) 특별할 수가 없는데, 어떡하지. (다시 수첩에 로이드가 말한 걸 적는다.) 지금 이걸 적는 이유도... 그댈 잊지 않기 위해서인데 말야.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아, 이런 상황을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알리시아의 말을 들은 동시에 표정을 쳐다본다. 이건 명백한 자신의 말실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명령 거부권 내용은 여기에 적지 말고, 다음 세계에서 온전한 채로 만날 수 있다면 그때 주는 걸로. 전 분명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조금 자신만만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뭐, 계약서라도 적을까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진지하게 로이드의 말을 듣다가 계약서, 라는 말에 그만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우리가 분명히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계약서? 좋지. 뭘 믿고 확신하는 건지는 몰라도, 내가 손해볼 건 없으니까. 만약에 그대가 계약을 어기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역시 아까의 암울한 듯한 표정보다는 웃는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다. 태양 같은 머리카락에 푸른 바다를 담은 눈, 여름처럼 뜨거운 성격까지. 비가 쏟아지던 여름, 맑고 화창하던 여름, 그것들이 모두 가짜라면 진짜 여름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다시 만나게 되면 명령 거부권을 저에게 주시고, 만나지 못한다면... (만나지 못한다면, 이 계약도 결국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그 조건은 선배께서 적어주시죠. 그게 더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의 마지막 말을 듣고, 가만히 두 눈을 몇 번 깜박인다.) 만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내게 다시 돌아올 것. 그러려고 노력할 것을 서약하면... 내가 조금은 마음이 놓이지 않을까 싶은데. (잠시, 로이드가 영영 사라진 세계를 생각해본다.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그 과정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슬펐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그럼 그렇게 적을까요? 저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돌아갈 자신이 있거든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요. 폭우를 뚫어서라도, 반드시 찾아가죠. (사실 이러면 자신도 손해볼 게 없다. ...라는 걸 선배가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선배가 안다는 걸 내가 아는 걸 선배가 아는 걸 내가... 그만하자.) 그러면 계약서는 이대로 끝이죠? (어차피 졸업하고 꿀 빠는 삶에서 알리시아가 빠지는 걸 상상하기는 자신도 아려웠다. 물론 알리시아가 꿀 빨게 냅두지는 않겠지만.)
아, 그리고 그때 기억나세요? 저희가...
 
취미,
 
좋아하는 것,
 
탐사자와의 관계나 일화,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
 
기억해달라는 말과 함께 어느 정도 정보를 적었을 때 즈음,
 
로이드의 목소리마저 뭉툭해져 알아들을 수 없게 됩니다.
 
로이드는 알리시아의 어깨 위로 툭,
 
힘없이 머리를 기대네요.
 
그 무게마저 낯섭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도,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제가 방금 전에도 말했죠? 분명 다시 만날 방법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잊으시면 안 됩니다? (...) 마지막으로, 제 이름 좀 불러주실 수 있나요?
 
계속,
 
다시.
 
불안하게 떨리는 그 목소리.
 
로이드는 자신의 이름을 한참 동안 불러달라고 속삭입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제 어깨 위로 기댄 로이드의 머리를, 무의식적으로 쓰다듬는다. 마치 이러면 마음이 안정이라도 되는 듯이. 언제까지라도... 로이드를 기억할 수 있다는 듯이.) 로이드… 프론테라.
 
"...기억해주셔야 해요."
 
그 이름 역시 떠올리기 힘들어질 때면,
 
□□□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흰 물감을 군데군데 풀어둔 하늘 아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지워집니다.
 
기대어 느껴지던 무게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
 
□□□,
 
□□□….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지금처럼.
 
둘,
 
셋.
 
...
 
...
 
...
 
...
 
여름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습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데자뷔처럼 옥상에는 당신만이 홀로 남아있습니다.
 
SANC 0/1.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1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손에는 힘껏 구겨진 수첩,
 
급하게 휘갈겨 쓴 티가 역력한 글이 남아있네요.
 
가장 크게 □□□에 대한 정보라고 적혀있으며,
 
그 아래로는 누군가의 사소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
 
□□□,
 
□□□….
 
절대 잊어선 안 될 이름인데도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지.
 
이젠 여름이 원망스럽게 느껴집니다.
 
□□□를 되찾고,
 
이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오로지 당신의 힘으로만,
 
홀로.
 
한참을 되뇐다고 하여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철조망에 오래 기댄 탓에 몸이 찌뿌둥하기도 하네요.
 
툭,
 
알리시아가 움직이자 가벼운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허리를 숙여 떨어진 종이를 줍는다.)
 
작은 쪽지를 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보입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도서실. 맞아. 학교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도서실...에 간다고 했었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휘갈겨 쓴 탓에 더 알아보기 힘듭니다.
 
숫자는 뭐고, 또 그사이의 글은 뭔지…
 
딩동댕동-
 
…그사이에 수업 하나를 완전히 빠진 것 같습니다.
 
잠시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아니,
 
생각해보면 이곳은 진짜 세계가 아니므로 상관없는 일이죠.
 
어쨌든 쉬는 시간입니다.
 
이름도,
 
성격도,
 
함께한 추억도,
 
그 모든 게 조각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만이 남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를 오롯이 기억하는 건 당신뿐입니다.
 
도서실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잊고 싶지 않은 그 이름을 다시 되새기려 한다. 하지만 기억이 흐릿해져 간다. 도서실을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답답한 마음에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속은 이 계절을 완전히 받아내지 못합니다.
 
그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웃었던가요?
 
이 평화로운 세계를 떠날 정도로,
 
그 아이는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구겨진 수첩에는 옅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도서실에 도착하면,
 
[종교]. [예술], [언어]가 적힌 책장들이 빼곡합니다.
 
기이한 충동입니다,
 
저곳에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듭니다.
 
사서 선생님께선 보이지 않네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작은 쪽지를 다시 쳐다본다. 840... 800번대가, 어떤 분류였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우선, 종교와 예술쪽 부터... 볼까. (그 남자는.. 어디에 있을지를 잠시 생각한다.)
 
2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종교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신도들은 샤그나 판을 광적으로 모시고,
 
그 신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애완동물 이상의 취급을 받길 원하여 샤그나 판을 직접 그들의 세계로 모시고자 하였다.
 
최근 샤그나 판 신도들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고……
 
(중략)
 
……그러나 그 세계는 불완전한 실패작,
 
저주의 한 종류였다.
 
그들이 모시는 신을 감히 옮길 수는 없더라도,
 
누군가를 가두기에 썩 유용한 공간이지 않은가?
 
이를 위해 대상자는 외부세계와의 연결이 약해져야 한다.
 
외부세계와 이어진 매개체가 곁에 있을 경우,
 
저주는 풀리고 세계는 그렇게 무너진다.
 
`종교, 혹은 미신 이야기
 
예술에 관한 책장으로 시선을 옮기면,
 
6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예술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름다운 별자리를 닮은 이 무늬는 시체에서 발견되었다.
 
주술적인 용도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며,
 
이 그림을 본떠 만든 작품이 바로……
 
(중략)
 
……놀랍게도, 두 그림을 합치자 별자리는 하나로 이어졌다.
 
한 그림을 두 사람이 나누어 가진 모양새였다.
 
고대 예술과 발전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별자리? 무슨 이야기인지 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도서실을 훑는다.)
 
7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언어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
 
인생은 삼세판!
 
한 번 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2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게 되네
 
언어에도 중력이 있다고 주장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뱉을 수 있는 단어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것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하였다.
 
남을 기억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이므로.
 
그것은 무언가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가령 인연, 기억, 세계, 혹은…….
 
언어의 기원
 
모두 살펴본 후,
 
알리시아는 800번대 [문학] 책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쪽지에 적힌 창구 번호, 840.01이12꽃.
 
그것은 <꽃갈피>란 제목의 얇은 영문 시집이었습니다.
 
꽃으로 책갈피를 만드는 방법과 짧은 시들이 실려있습니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꽃을 여러 번 말려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의 여름을 닮았습니다.
 
수없이 반복한 탓에,
 
심장에 꽂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마른 우리의 NN번째 여름.
 
책에는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
 
□□□…
 
그래요,
 
외부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거짓된 세계를 부술 수 있는 한 단어.
 
그러나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거짓된 세계라고 하여도 한 사람만이 사라진 이곳은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굳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나요?
 
우린 다시 우주 미아가 되고 말 텐데,
 
기약 없이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나들어야 할까요?
 
알리시아,
 
당신에게 로이드는 그럴 가치가,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가 남기고 간 쪽지를 되새기며 읽는다. 잊어버리고, 나는 그대로 여기에서... 살아가는 게 최선일까?) 로이드 프론테라... (잊지 말아 달라고 한 그 이름을 홀로 불러본다. 그 어떤 언어들 중에서도 그의 이름이 가장 무거운 것만 같았다.) 그대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로이드가 없다고 해서, 내가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매일매일에 로이드가 생각난다면... 그게 정말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엔딩
 
 
깜빡.
 
당신이 로이드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세계의 소리가 멈춥니다.
 
맴맴 울던 매미의 소리,
 
복도에서 재잘재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시간이 멈춘 듯 이곳은 고요해집니다.
 
기이한 침묵.
 
충분히 겁먹을 만한 상황인데도 되레 익숙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깜빡이던 형광등이 꺼지고 맙니다.
 
정전일까요?
 
아니… 창밖을 봐요, 알리시아.
 
창밖으론 하늘, 땅이랄 것도 없이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새까만 밤과 반짝이는 은하수,
 
촘촘히 박힌 별들.
 
건물도 도로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고, 또 짙은 밤하늘이 전부입니다.
 
SANC 0/1d2.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깨닫게 됩니다.
 
이 거짓된 세계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요.
 
모두가 사라지고 오로지 알리시아만이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아니,
 
혼자가 아니라…
 
"선배!"
 
운동장이었던 그 너른 공간 한가운데,
 
우주 위로 로이드가 동동 떠 있습니다.
 
반짝이는 별들 사이 중력을 무시한 채 흩날리는 로이드의 머리카락.
 
마치 그림의 한 폭 같습니다.
 
물론 감상이 이어지기도 전,
 
그는 당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네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로이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장 밖으로 나오라고,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고.
 
쿠궁,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별가루들이 흩날립니다.
 
어라?
 
그러나 당황하던 것도 찰나.
 
정신을 차리면 100번,
 
600번,
 
800번.
 
책장들이 모두 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어요.
 
심지어… 도서실 전체-학교 전체가!
 
당연하죠,
 
이 세계를 부수는 단어는 당신이 읊었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잔해 속에 깔리는 건 아닌지….
 
"제가 받아드릴게요, 뛰어내리세요!"
 
다행히도 창문이 보이네요.
 
아니,
 
이게 다행인가요?
 
지금이 당신이 있는 층은 1, 2, 3…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부서지는 학교,
 
창문 아래의 로이드가 소리칩니다.
 
말이 쉽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요.
 
시간이 없습니다.
 
창틀을 딛고,
 
유일하게 부서지는 세계 속 당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뛰어내려요,
 
알리시아.
 
응원하듯 거센 바람이 당신의 등 뒤에서부터 불어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로이드를 바라본다.) 나를? 받는다고? 내가 그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뛰어내리라는 말을 믿고 온 건 자신이다. 다시 한번, 기억속에서 흩어져가는 그의 이름을 다시 모아 소리친다.) 로이드 프론테라...!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끄응...) 아무리 생각해도 선배가 절 받는 게 맞지만... 뭐, 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걸 듣고는 여전히 형체 없는 얼굴로 웃으며, 자신도 외친다.) 얼른 뛰어내리시죠, 학생회장님!
 
창턱을 밟고 아래로,
 
다시 아래로.
 
별가루가 흩어지매 까만 우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이어질 추락에 눈을 질끈 감아도 당신은 아주 천천히,
 
중력을 무시하고 아주 천천히.
 
바람 따라 나는 민들레 씨처럼 느릿하게 떨어집니다.
 
그런 당신을 로이드는 쉽게 그러안아 잡습니다.
 
와락,
 
중력이 있었다면 조금 어려운 일이었겠죠.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탓에 꼭 물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이윽고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외부 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로이드가 묻습니다.
 
제 이름, 기억나세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이름을 말해도 되는 걸까. 외부 세계와 강하게 연결된 이의 이름을... 부르면. 혹시라도 무언가가 또 잘못되어, 이곳에 영영 다시 갇혀버릴까봐. 알 수 없는 불안이 덮쳐온다. 그러나 점점 선명해지는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이름을 외친다.) 부회장, 아니. 로이드. (로이드에게 매달려 환하게 웃는다.)
 
알리시아가 답을 하자,
 
로이드의 얼굴이 되돌아옵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환하게 웃는 알리시아의 얼굴에 자신도 환한 얼굴을 하고는 묻는다.) 그럼 저희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기억하시죠? (이전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불안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밝은 표정과 목소리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돌아온 로이드의 얼굴을 보고, 살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뜬다. 이내 깜박거리는 파란 눈에서는… 마치 곧 눈물이 떨어질 것도 같았다.) 글쎄, 그대는... 기억하나?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로이드와 눈을 맞추고서는 말한다.) 소중한 사람인 것 같은데.
 
알리시아가 답을 하자,
 
반짝.
 
이번 물음은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당연히 기억하죠! ... 저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해놓고 낯간지러운지 고개를 살짝 돌린다. 그러고 작게 소리내어 웃고는 다시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묻는다.) 이것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계약에 따르면 제가 지금 받아야 할 건?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가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인지, 말해놓고 부끄러워하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서인지. 이상하게 웃음이 계속 나왔다.) 계약에 따라서, 내게서 뽀뽀라도 받고 싶은가? (그렇게 말하는 알리시아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정답을 알지만, 왠지 모르게 명령 거부권 같은 건... 순순히 주고 싶지 않았다.)
 
알리시아가 답을 하자,
 
모든 별가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멈춥니다.
 
답을 들은 로이드가 당신의 두 손을 잡습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이게 사람인지, 불에 넣은 감자인지, 얼굴이 붉어지며 놀란 기색으로 바로 답한다.) 네? 그런 계약은 한 적 없는데요?! 저기, 제 명령 거부권은요? (...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말하기에도 이상하다! 어째 자신은 항상 알리시아에게 놀림받기만 하는 건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순간, 로이드의 얼굴이 불에 넣은 감자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 명령 거부권을 쓰고 싶다는 건가? 싫다고? (로이드를 놀릴 목적이 맞았으면서도, 그가 냉큼 떡밥을 물지 않자 어쩐지 아쉬운 모양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예? 아뇨, 절대 싫다는 건 아니고요! 진심입니다!! 정말 진짜로 싫지 않습니다!!! 그냥 계약에 따라 명령 거부권을 받아야 하기에 말한 건데...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횡설수설한다. 그러고는 뭔가 떠올린듯 말한다.) 아,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실 거죠? (알리시아에게 당해 질문할 것도 다 꺼먹었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그냥 싫지 않다, 라고만 말해도 될 것을. 저리 열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즐거웠다.) 그래, 집으로 돌아가야지. 우리의 집으로. (잡은 로이드의 두 손을 더욱 꽉 쥔다.)
 
알리시아가 답을 하자,
 
피부 위로 새겨진 별자리와 같은 무늬가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둘의 팔을 타고 이어져 반짝입니다.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립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잖아요?
 
부서져 가는 세계,
 
거짓된 세계,
 
꾸며진 여름.
 
우린 그것들을 두고 차원의 관문을 넘을 거예요.
 
어쩌면 다시 우주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가 환히 웃습니다.
 
마주 잡은 손이 웅웅,
 
진동하며 가볍게 떨립니다.
 
이번에는 어쩐지 감이 좋아요.
 
수없이 반복한,
 
수없이 넘은 이 여름을.
 
"다음 세계에서도, 서로를 기억하는 겁니다?"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젠 모두 훌훌 털어버릴 차례입니다.
 
알리시아가 마지막으로 답하자,
 
강한 빛이 주문진에서 쏟아집니다.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우주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보며,
 
지금처럼.
 
둘,
 
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