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지금 이 시간에, 여긴 어떻게... (로이드의 다 젖어버린 옷을 위아래로 쳐다본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쩐지 쉽게 물어볼 용기가 들지 않는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알리시아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곤 불안한 눈길로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연다.) 괜찮은 거죠?
…무엇이?
그리 묻는 로이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고칩니다.
아까처럼 목소리를 떨지 않고,
그저 태연한 낯으로.
우산이 없어 알리시아의 집을 방문했다는 이유도 함께 덧붙입니다.
우선은 젖은 로이드를 집안으로 들이는 게 좋겠죠.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표정을 뻔뻔하게 하는 건, 왜 이런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건지.) 일단, 들어와. 거기에 계속 서 있다가는 감기 걸리겠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알리시아의 대답에 정신 차리고는 현관문 안으로 발을 들인다.) 아, 네. (...) 안은 왜 이렇게 어두워요? 비도 오는데, 불이라도 켜두시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의 얼굴을 살짝 올려다본다.) 정전이었어. 방금. (로이드가 꽁꽁 숨겨두고 있는 마음을 읽기라도 하려는 건지, 조금은 날카로운 눈빛이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구는 로이드의 속마음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시간에 어딜 가고 있었길래, 우산도 없이...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알리시아의 얼굴을 마주봤다가 저 너머로 보이는 TV를 빤히 쳐다본다.) 정전이었다고요? 근데 저 TV 조금씩 전원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은데... (날카로워 보이는 알리시아의 눈빛을 슬쩍 피하고는 말을 잇는다.) 아, 어차피 저희... 떠나야 하니까요. (조금 작게 말한다. 잠깐 불안한 표정이 엿보엿던 것 같기도.)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의 시선에 고개를 돌려 TV를 쳐다본다. 로이드의 말대로 화면에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래, 이제 조금씩 돌아오나 보네. (그런데, 떠난다고? 어디로? 이상하리만큼 흐릿한 기억을 헤집어보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다.) 떠난다고...?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뭐, 돌아오고 있다는 건 다행이네요. (완전히 전원이 켜진 TV를 바라본다. 기습폭우... 지금은 어느 채널을 틀어도 그 내용만 나오려나.) 아, 그냥 혼잣말이에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뻔뻔한 표정을 짓는다.) 근데, 저 좀... 들어가면 안 되나요? 추운데...
다시 전원이 들어온 네모난 상자 속 [뉴스]는 여전히 이번 기습폭우를 다루고 있으며,
[화장실]에서는 뽀송한 수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 [부엌] 찬장에 고이 모셔둔 티백으로 차가운 KPC의 몸을 녹일 수 있겠네요.
[로이드]는 젖은 탓에 그저 우뚝 서 있습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우선 젖은 몸을 말려주는 게 우선이겠지. 저대로 계속 있다가 감기라도 걸리겠어.) 우선, 저기 앉아있어 봐. (수건을 가지러 화장실로 향한다.)
자, 여기. (수건을 툭 던진다.) 몸이라도 말리고 있어봐.
로이드는 짧게 대답하곤 앉아서 알리시아가 던진 수건을 받습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죄송한데 수건 딱 한 장만 더... (뻔뻔하게 미소짓는 표정으로 요구한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갑자기 왜 이러지? 내가 이렇게 넘어질 뻔하다니. 앞으로 운동과 훈련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아래에 뭐가 있었나 싶어 아래를 쳐다본다.)
왠지 모르게 타일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특별한 게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바닥이 조금 미끄러웠던 것 같네요.
알리시아의 그런 모습을 로이드가 빤히 쳐다봅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뭐지? 타일이... 색이 원래. 이랬나?) 자 여기, 수건. 설마 한 장이 더 필요하다고 하진 않겠지? (칫솔도 색이 이상하던 게 기억에 밟히지만,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로이드의 모습을 보고 잠시 생각을 멈춘다.)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실래?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아,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네요. 성은이 망극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게 웃으며 받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넘어질 뻔한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말했다간 혼날 것 같은 직감에 입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따뜻한 차요? 당연히 좋죠. 종류는 뭐, 아무거나.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분명, 먹을만한 게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물을 한 컵 받아 로이드에게 가져간다.) 자, 따뜻할 때 얼른 마셔.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분명... 차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떨떠름하게 받고는 알리시아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한 입 마시고 입을 연다.) 큼큼, 그냥 따뜻한 물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까 수건도 하나 더 달라고 했는데, 혹시나 혼날까봐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시선은 TV로 향한다.)
“기습폭우에 의한 피해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를 따라 TV가 전하는 소식을 듣는다.) 비 소식이 계속 들리네. (수건으로 한 번 닦아내었음에도 여전히 젖어있는 로이드를 곁눈질한다.) 오던 길에, 비가 온 거야?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TV를 보다가 물기를 닦아내기 위해 반쯤 수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말한다.) 네, 오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라고요. 누가 비 오라고 주문이라도 외운 것처럼...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실루리아? 분명 들어본 이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실루리아는 부회장이 아니지 않았나? 의문을 꺼내고 싶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후배의 표정에 다시 입술을 다문다.) 아냐, 학생회실 가면... 있겠지. 늦겠다, 가자.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다시 한 번 교실을 확인한다. 분명, 로이드가 있던 반이 맞다.) 어떻게 된 거지. (아까, 로이드가 기억이 돌아왔냐고 묻던 게 떠오른다. 기억을 떠나서, 네가 여기에 없는데 어떡하라는 건지. 이상할만큼 얄미운 그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라도 싶지만, 그는 지금 이곳에 없다.) 도서실...에 간 건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지나가던 친구들이 알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저기, (지나가던 친구를 한 명 잡는다. 이걸 물어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 아닌지, 잠깐 고민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혹시 로이드라고, 알아? (부회장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다, 방금 전 후배와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질문을 멈춘다.)
:그...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저희 반인가요? 그런 사람은 저희 학교에 없었던 것 같은데.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안 보이시는 거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불안해 보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건줄 알았는데. 나만 지금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 건 줄 알았는데. 그래서, 로이드를 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의문들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로 저처럼 같은 의문을 갖고 있는 로이드의 모습에... 더욱 불안해진다.) 로이드 프론테라…. (로이드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가진 기억들이... 흐릿해지는 것 같아.
손을 뻗으려던 로이드는 그대로 굳어 당신을 마주 봅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분명 그리 느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요동칩니다.
가는 침묵이 흐른 후 로이드는 알리시아를 와락 끌어안습니다.
쿵,
쿵.
엇박자로 뛰는 심장 박동 소리.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기억들도 사라지고 있다고요? (분명히 떨리는 목소리였다. 이상하다, 분명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 정말로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아직도 기억 안 나시죠? 저희가 실종되었던 날이요.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묻어나온다. 불규칙한 파도가 해안으로 몰려와 거품이 되어 사라지듯. 자신이 사라지고 있는 건 인지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에서도 사라지는 건, 여름 내내 울다 사라지는 매미의 결말처럼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사라지다니, 무슨 소리야.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이 현실이라 말해주고 있는데도. 차마 로이드가 제 기억속에서까지 사라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폭우... 그래.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지. 그런데... 실종이라고? (기억을 다시 되짚어본다. 갑자기 사라진 건 로이드였지, 자신이 아니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 역시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거구나.) 여기, 저희가 살던 세계가 아니에요. 원래 차원의 관문으로 신도들에게서 도망쳤었는데... 그러다가 우주 미아가 되었고요. (알리시아는 기억하지 못하는 진실들과, 우리의 기억, 아니, 어쩌면 이젠 없어질지도 모르는 기억을 읊는다. 그러고는 진정한 듯 알리시아에게서 천천히 떨어진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차원을 넘었었고, 가끔 이렇게 다른 세계로 가다가 기억을 잃기도 했었는데...
…우리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하는 로이드에게 뻗던 손을 멈춘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아스라히 흩어지기만 하던 기억의 파편 일부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로이드가 했던 말들이 조금씩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원래 있던 세계는 어떤 공간일까?) 로이드, 그대는...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지?
흐릿한 그 얼굴,
아니,
그 형체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인지,
혹은 다 알고 있지만 답해 줄 수 없단 것인지.
모든 것을 떠올린 알리시아,
SANC 0/1d2.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비가 멈추는 것은 주문진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도,
맑고 화창한 이 여름도.
모두 우리의 진짜 여름이 아닙니다.
우린 원래 세계를 찾아 한없이 우주를 넘나들었죠.
그 과정 중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어느 세계,
잘못된 위치에 떨어져 바다에 빠졌던 우리,
겨울 별자리가 보이던 또 다른 세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아서,
다음 세계로.
그렇다면 왜,
이번 평행세계에서 로이드는… 사라지는 중인 걸까요?
로이드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세계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이 세계는 확실히 다른 곳들과 달라요. (이제는 체념한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다들 절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사라지는 중이고요. (흐릿한 형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눈은 알리시아의 눈을 응시한다. 형체가 온전했다면 여전히 뻔뻔함을 보였을지, 불안한 눈길을 보냈을지, 눈물을 흘렸을지, 잘 모르겠다.) ...알리시아 선배, 선배도 역시 절 잊을지도 몰라요.
흐르지 않는 몽글한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선 곳의 짙은 파랑이 가려집니다.
로이드는 천천히 철조망에 기대앉아 당신에게 작은 수첩과 연필을 건넵니다.
당신을 위해 옆자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그 손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 손은,
로이드의 얼굴처럼 흐려지고 형태를 잃고 있습니다.
이건 잊지 않기 위한 기록입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고등학생이고, 선배보다 조금 큰 키에, 갈색 머리, 검은 눈. 아, 얼굴은 감자 같다고 써두면 좋겠네요. 그 편이 더 기억하기 쉬우실 것 같은데. (이제는 조금 태연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마치 한여름 밤의 물결처럼 잔잔하게.) 어서 여기 앉아서 적으세요. 아, 명령은 아닌 거 아시죠?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 (본인이 본인 얼굴을 감자 같다고 소개하다니) 스스로 그렇게 말하면, 너무 미화된 거 아닌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작게 웃는다) 명령은, 아니지. 그렇지. 명령은, 내가 너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그러나 학생회장으로서의 명령이 아닌 다른 명령은 기억 속에서 흐릿하다. 이를테면 국왕으로서의 명령이라던가.) 그래, 그렇게 기록해 두도록 하지. (로이드에게 받은 수첩에 몇 가지를 기록한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뭐, 이렇게 적어두면 기억하기 더 쉬우니까요. 잊지도 않을 거고...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하다니, 평생 자신은 알리시아 밑에서 똥강아지처럼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직감한 듯하다.) 윽, 그래도 지금까지 명령 잘 들으며 살아왔으니, 명령 거부권 같은 거라도 하나 주시면 안 되나요? (왠지 뭐 하나라도 잘못했다가는 평생 잡혀 살 것 같다. 모든 문서에 서명을 하는 일, 왕국의 정원을 설계하는 일 같은 것들을 전부 도맡아 할 것 같은 느낌.) 이런 것도 적어둘까요? 부회장이 돼서 늦게가지 학생회실에 남아 있었던 일 같은 거요. (반강제로 부회장이 됐다는 걸 기록하면 안 되겠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뭐? 명령 거부권?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 있었던 것 같은 묘한 기분을 헤집는다.) 명령 거부권이 너에게, 아니, 그대에게 있었던 세계는.. 어느 세계였을까? (고개를 돌려 로이드를 바라본다.) 그래. 우리가 회장, 부회장이었던 것도 적고. 내가 부회장 자리를 추천했다는 사실까지 함께 적도록 하지. (로이드와 눈을 마주친 채로 환하게 웃는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 아마 어느 세계에서도 제가 명령 거부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하지만 이번에 저에게 명령 거부권을 주신다면! 이 세계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부터 조금 특이한 경우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죠, 그것도... 추천이죠. 예... (지금 표정이 안 보이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취미나 좋아하는 것 같은 다른 것들도 적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 대련이 좋겠네요. (자신도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웃었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웃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기록을 적던 손을 멈춘다. 로이드를 바라보지만, 그가 웃고 있는지 혹은 울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세계를 더 특별하게...? (미소를 짓던 표정이 미묘해진다.) 네가 사라지는 세계는... (고개를 로이드의 반대편으로 돌리고는 말을 잇는다.) 특별할 수가 없는데, 어떡하지. (다시 수첩에 로이드가 말한 걸 적는다.) 지금 이걸 적는 이유도... 그댈 잊지 않기 위해서인데 말야.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아, 이런 상황을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알리시아의 말을 들은 동시에 표정을 쳐다본다. 이건 명백한 자신의 말실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명령 거부권 내용은 여기에 적지 말고, 다음 세계에서 온전한 채로 만날 수 있다면 그때 주는 걸로. 전 분명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조금 자신만만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뭐, 계약서라도 적을까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진지하게 로이드의 말을 듣다가 계약서, 라는 말에 그만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우리가 분명히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계약서? 좋지. 뭘 믿고 확신하는 건지는 몰라도, 내가 손해볼 건 없으니까. 만약에 그대가 계약을 어기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역시 아까의 암울한 듯한 표정보다는 웃는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다. 태양 같은 머리카락에 푸른 바다를 담은 눈, 여름처럼 뜨거운 성격까지. 비가 쏟아지던 여름, 맑고 화창하던 여름, 그것들이 모두 가짜라면 진짜 여름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다시 만나게 되면 명령 거부권을 저에게 주시고, 만나지 못한다면... (만나지 못한다면, 이 계약도 결국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그 조건은 선배께서 적어주시죠. 그게 더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의 마지막 말을 듣고, 가만히 두 눈을 몇 번 깜박인다.) 만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내게 다시 돌아올 것. 그러려고 노력할 것을 서약하면... 내가 조금은 마음이 놓이지 않을까 싶은데. (잠시, 로이드가 영영 사라진 세계를 생각해본다.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그 과정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슬펐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그럼 그렇게 적을까요? 저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돌아갈 자신이 있거든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요. 폭우를 뚫어서라도, 반드시 찾아가죠. (사실 이러면 자신도 손해볼 게 없다. ...라는 걸 선배가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선배가 안다는 걸 내가 아는 걸 선배가 아는 걸 내가... 그만하자.) 그러면 계약서는 이대로 끝이죠? (어차피 졸업하고 꿀 빠는 삶에서 알리시아가 빠지는 걸 상상하기는 자신도 아려웠다. 물론 알리시아가 꿀 빨게 냅두지는 않겠지만.)
아, 그리고 그때 기억나세요? 저희가...
취미,
좋아하는 것,
탐사자와의 관계나 일화,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
기억해달라는 말과 함께 어느 정도 정보를 적었을 때 즈음,
로이드의 목소리마저 뭉툭해져 알아들을 수 없게 됩니다.
로이드는 알리시아의 어깨 위로 툭,
힘없이 머리를 기대네요.
그 무게마저 낯섭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도,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제가 방금 전에도 말했죠? 분명 다시 만날 방법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잊으시면 안 됩니다? (...) 마지막으로, 제 이름 좀 불러주실 수 있나요?
계속,
다시.
불안하게 떨리는 그 목소리.
로이드는 자신의 이름을 한참 동안 불러달라고 속삭입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제 어깨 위로 기댄 로이드의 머리를, 무의식적으로 쓰다듬는다. 마치 이러면 마음이 안정이라도 되는 듯이. 언제까지라도... 로이드를 기억할 수 있다는 듯이.) 로이드… 프론테라.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가 남기고 간 쪽지를 되새기며 읽는다. 잊어버리고, 나는 그대로 여기에서... 살아가는 게 최선일까?) 로이드 프론테라... (잊지 말아 달라고 한 그 이름을 홀로 불러본다. 그 어떤 언어들 중에서도 그의 이름이 가장 무거운 것만 같았다.) 그대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로이드가 없다고 해서, 내가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매일매일에 로이드가 생각난다면... 그게 정말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로이드를 바라본다.) 나를? 받는다고? 내가 그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뛰어내리라는 말을 믿고 온 건 자신이다. 다시 한번, 기억속에서 흩어져가는 그의 이름을 다시 모아 소리친다.) 로이드 프론테라...!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끄응...) 아무리 생각해도 선배가 절 받는 게 맞지만... 뭐, 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걸 듣고는 여전히 형체 없는 얼굴로 웃으며, 자신도 외친다.) 얼른 뛰어내리시죠, 학생회장님!
창턱을 밟고 아래로,
다시 아래로.
별가루가 흩어지매 까만 우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이어질 추락에 눈을 질끈 감아도 당신은 아주 천천히,
중력을 무시하고 아주 천천히.
바람 따라 나는 민들레 씨처럼 느릿하게 떨어집니다.
그런 당신을 로이드는 쉽게 그러안아 잡습니다.
와락,
중력이 있었다면 조금 어려운 일이었겠죠.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탓에 꼭 물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이윽고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외부 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로이드가 묻습니다.
제 이름, 기억나세요?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이름을 말해도 되는 걸까. 외부 세계와 강하게 연결된 이의 이름을... 부르면. 혹시라도 무언가가 또 잘못되어, 이곳에 영영 다시 갇혀버릴까봐. 알 수 없는 불안이 덮쳐온다. 그러나 점점 선명해지는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이름을 외친다.) 부회장, 아니. 로이드. (로이드에게 매달려 환하게 웃는다.)
알리시아가 답을 하자,
로이드의 얼굴이 되돌아옵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환하게 웃는 알리시아의 얼굴에 자신도 환한 얼굴을 하고는 묻는다.) 그럼 저희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기억하시죠? (이전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불안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밝은 표정과 목소리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돌아온 로이드의 얼굴을 보고, 살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뜬다. 이내 깜박거리는 파란 눈에서는… 마치 곧 눈물이 떨어질 것도 같았다.) 글쎄, 그대는... 기억하나?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로이드와 눈을 맞추고서는 말한다.) 소중한 사람인 것 같은데.
알리시아가 답을 하자,
반짝.
이번 물음은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당연히 기억하죠! ... 저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해놓고 낯간지러운지 고개를 살짝 돌린다. 그러고 작게 소리내어 웃고는 다시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묻는다.) 이것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계약에 따르면 제가 지금 받아야 할 건?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로이드가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인지, 말해놓고 부끄러워하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서인지. 이상하게 웃음이 계속 나왔다.) 계약에 따라서, 내게서 뽀뽀라도 받고 싶은가? (그렇게 말하는 알리시아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정답을 알지만, 왠지 모르게 명령 거부권 같은 건... 순순히 주고 싶지 않았다.)
알리시아가 답을 하자,
모든 별가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멈춥니다.
답을 들은 로이드가 당신의 두 손을 잡습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이게 사람인지, 불에 넣은 감자인지, 얼굴이 붉어지며 놀란 기색으로 바로 답한다.) 네? 그런 계약은 한 적 없는데요?! 저기, 제 명령 거부권은요? (...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말하기에도 이상하다! 어째 자신은 항상 알리시아에게 놀림받기만 하는 건지...)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순간, 로이드의 얼굴이 불에 넣은 감자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 명령 거부권을 쓰고 싶다는 건가? 싫다고? (로이드를 놀릴 목적이 맞았으면서도, 그가 냉큼 떡밥을 물지 않자 어쩐지 아쉬운 모양새다.)
로이드 프론테라 (김수호):예? 아뇨, 절대 싫다는 건 아니고요! 진심입니다!! 정말 진짜로 싫지 않습니다!!! 그냥 계약에 따라 명령 거부권을 받아야 하기에 말한 건데...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횡설수설한다. 그러고는 뭔가 떠올린듯 말한다.) 아,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실 거죠? (알리시아에게 당해 질문할 것도 다 꺼먹었었다!)
알리시아 테르미나 마젠타노:(그냥 싫지 않다, 라고만 말해도 될 것을. 저리 열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즐거웠다.) 그래, 집으로 돌아가야지. 우리의 집으로. (잡은 로이드의 두 손을 더욱 꽉 쥔다.)